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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 있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이 책이 있기 전에 〈칠곡 가시나들〉이 있었다. 칠곡의 한 마을에서 할머니들이 한글학교를 다니는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할머니들은 서로 의지하며 늦게나마 글을 깨치고,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울며 항상 노래를 부른다. 예고편에 담긴 봄날에 교복을 입고 춤추는 할머니들과, 익숙한 사투리, 할머니들이 쓴 솔직한 시에 반해 영화를 보러 갔더랬다. 극장에서 제일 작은 상영관에 관람객도 몇 없었지만 그해 본 영화 중 가장 좋았다. 길을 걷다가도 한 번씩 고개를 들고 커다란 간판 글씨를 읽어보던 할머니들의 뒷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 영화의 감독님이, 촬영 비하인드와 다 전하지 못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꾹꾹 눌러 담아 이 책을 썼다. 영화에선 예선 탈락만 나와 관객들을 함께 안타깝게 했던 곽두조 할머니의 놀라운 반격도 실렸다. 영화를 좋게 본 분들이라면 소장해도 좋다.

 

하지만 비단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만 책을 소개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감독님이 영화를 찍으며 할머니들을 볼 때마다 감독님의 어머니를 자주 떠올렸듯, 나도 책을 읽으며 어머니를 자주 떠올렸다. 전화 한 번, 문자 하나 할 때마다 우리 엄마도 이렇게 고민하겠지. 차마 나에게 말을 못 해 웃음 아래에 아껴둔 이야기가 있겠지. 나는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 엄마에게는 부족하게 느껴졌던 점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아 말을 꺼내다 울겠구나. 우리 어머니도 책 속 할머님들만큼 나이가 들 텐데, 그때 어머니를 대하는 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참 많이 고민했다.

 

책 속에 이런 말이 나온다.

 

“효는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겠지요. (…) 그런데 나이 든 부모의 설렘을 가장 방해하는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바로 자녀들입니다. (…) 에이 엄마, 힘들게 그걸 왜 해요? 스트레스만 받지. 아빠 거기 가지 마시라니까. 추운데 넘어지면 큰일 나요. 참 엄마도 주책이다. (…) 걱정해서 하는 무의식적인 말이 부모님을 움츠러들게 하고 설렘을 망쳐버립니다."

 

책 읽기 전까지만 해도 적당히 제 손으로 돈을 벌고 어느 정도 능력이 있으면 그게 효겠지. 했는데. 책을 읽으며 어쩌면 부모님 맘속에 감춰진 시를 쓸 수 있게 마음을 전하고 응원하는 게 진정 성공한 효일 거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을 부모님으로서 효를 다하면서도, 부모님이 부모로서만 남지 않게 하는 걸, 엄마와 아빠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서 맘속에 눌러 담았을 이야기를, 이제는 연필에 꾹꾹 눌러 담아 쓸 수 있게 해드리는 것. 엄마가 스치듯 말했던 ‘하고 싶은 일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억지로 감동을 짜내려는 것도 아닌데, 책 속의 할머니들의 시를 읽다 보면 눈물이 났다.

 

김원영 변호사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 이런 말이 있다. 어떤 사람의 존엄성이란 그 사람이 스스로의 삶을 해석하고 스스로 삶의 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그 서사성에서 오는 것이라고. 어떤 존재라도 그 서사성만큼은 지니고 있노라고. 그리고 『오지게 재밌게 나이듦』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늘 누구 엄마, 누구 댁으로 불렸던 그녀들이 태어나 처음으로 선생님을 만나고서야 자신의 삶을 글로 표현하기 시작했어요.”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 본다는 건 정말 크나큰 일이다.

 

이 사회에 노인에 대한 서사는 하나밖에 없다. 움츠리고 쪼그라들어, ‘얼른 죽어야지’ 같은 앓는 소리만 내뱉는 이미지. 회색빛 이미지. 하지만 문해학교를 다니는 칠곡 할머니들의 하루하루는 ‘설렘’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나이가 어떻든, 어떤 환경이든, 사실 누구나 무언가에 ‘설렐’ 수 있고, 나의 이야기를 ‘기대할’ 수 있고, 나아가 그러한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 당신이 함부로 축약하고 무시해도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이 책이 알려주었다. 나도 할머니들 같은 할머니가 되고 싶다. 하루하루 설레고, 친구들이 있어 즐겁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배우는 용기 있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책 추천인으로도 나왔던 배우 김혜자 님 출연작, 〈눈이 부시게〉의 유명한 나레이션을 인용하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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